제7의 봉인 플롯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Det Sjunde inseglet,은 2012에 발표 된 스웨덴 96분, 12세이상관람가 2012 드라마 2012.05.10 개봉 영화입니다,영화는 잉그마르 베르히만가 지배하고 있습니다,군나르 뵈른스트란드,막스 폰 시도우,비비 앤더슨 및 기타 주요 배우,한국에서 2012년05월10일에 출시되었습니다.

페스트가 창궐한 14세기 유럽, 신의 존재와 구원의 의미를 찾는 기사의 여정

14세기 중엽,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10년만에 고국 스웨덴으로 돌아왔으나 페스트가 온 나라를 휩쓸어 고국은 황폐해져 있다. 그의 종자 옌스(군나르 비욘스트란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기사는 죽음의 사자의 방문을 받는다. 기사는 자신의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 사자에게 체스 게임을 제안하고 사자는 그에 동의한다. 승산이 없는 이 내기에서 블로크가 원하는 것은 체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을 말미 삼아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기사는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마녀로 낙인이 찍힌 소녀 옆을 지키기도 하지만 그 어디에도 죽음만이 보일 뿐, 신의 구원을 찾을 수 없다. 그러던 중 기사는 광대 부부와 그들의 아기를 만나 충만한 평화를 느끼게 되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동행을 자처한 기사는 자신의 시종 옌스와 그를 따라나선 여인과 일행을 이루어 길을 떠나는데…

그리고 어린 양이

일곱 번째 봉인을 떼었을 때에

하늘에서는 반 시간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다

그들에게는

일곱 개의 나팔이 주어졌다

[ ABOUT MOVIE ]

반 세기를 뛰어넘어 도착한 영화사의 걸작, 국내 최초 개봉!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린 경이로운 작품!

영화 역사에 영원히 남을 세기의 걸작!

"은 내가 진정으로 애착을 느끼는 몇 안 되는 영화들 중 하나이다.

사실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중에서

20세기 영화 예술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세계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작품 이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한국에서 개봉한다. 그간 영화제나 회고전을 통해 소개되었을 뿐, 놀랍게도 이 전설적인 걸작의 극장 개봉은 국내 최초이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영상 시인이자 영상 철학자로도 불릴 만큼,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존재와 구원 등 철학적, 신학적, 존재론적 질문들을 영화를 통해 던졌던 진지한 예술가였다. 그의 영적 탐험의 시기를 열었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은 베리만의 작가적 성숙기에 완성된 작품으로, 신과 인간의 존재 그리고 죽음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단 35일만에 촬영된 이 영화는 1957년 당시 개봉되자마자 언론과 평단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으며,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그랑프리를 수여하며 경의를 표했다.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그랑프리 수상작!

페스트가 창궐했던 14세기를 배경으로 죽음의 사자와 대결하는 기사의 여정을 통해 신의 존재와 인간의 구원이라는 문제를 탐색하는 은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린 세기의 걸작이다. 그러나 신과 인간 실존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의 무게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초현실주의에서 리얼리즘으로, 또는 시에서 익살로 변화무쌍한 스타일을 펼친다. 또한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사색적인 기사와 충직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종자가 펼치는 오디세이는 의인화된 죽음의 동행과 함께 흥미로운 로드 무비를 만들어낸다. 요한 묵시록의 이야기에서 따온 제목은,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신의 실존적 고통에 대한 답을 찾기로 결심한 기사의 여정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실존적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의 여정과 겹쳐지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며, 베리만이 던지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이 침묵한 세상에서 신의 존재를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

형이상학적 주제를 최초로 영화 속에 녹여낸 기념비적인 작품!

베리만의 철학적 비전이 담긴 불후의 명작!

“베리만은 종교, 죽음, 실존주의 등의 형이상학을 스크린에 옮겨온 최초의 감독이다.”

–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영화 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났던 기사 블로크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와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며, 고국 스웨덴은 페스트와 마녀 사냥의 집단적 광기로 황폐해져 있으나 신은 여전히 침묵할 뿐이다. 종말을 예고하는 현실의 징후들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기사는 번민과 고뇌에 휩싸이지만, 그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생의 남은 시간 동안 신의 존재를 확인하기를 소망한다.

신의 존재 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 삶의 부조리함, 인간 조건의 비극성 등 실존주의적 질문을 직설적으로 제시하는 영화 은 신학적,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동시에 고전 문학에 기반을 두면서 그 깊이를 더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 , 등을 연상시키는 우화적인 이야기에 베리만의 철학적 비전이 더해진 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신의 침묵과 죽음의 허무 앞에서 발견하는 구원의 희망

기사 블로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우연히 마주친 광대 부부는 우유와 산딸기를 대접하며 기사를 환대하고, 아름다운 류트 연주를 들려준다. 기사는 잠깐이나마 허무와 고뇌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과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 이 온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기사에게는 타인의 삶에 대한 배려와 삶에 대한 의지가 잠시나마 회복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베리만은 사랑과 생명력이 충만하고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소박한 가족을 등장시켜 인간 존재의 신성함을 강조하면서 행복의 정경을 그려낸다. 이는 젊은 부부의 서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기에 대한 사랑, 부모의 온 희망을 한몸에 지니는 아이의 존재를 축복으로 느끼는 가족 등 인간 사이의 따뜻한 사랑을 통해 믿음이 오며, 그 믿음으로부터 구원이 올지 모른다는 암시이며, 이것이 죽음의 허무 앞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열쇠이자 희망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을 이해하는 7가지 열쇠 The 1st key ]

요한 묵시록에서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인

"그리고 어린 양이 일곱 번째 봉인을 떼었을 때에 하늘에서는 반 시간 동안 침묵이 흘렀다"

- 요한 묵시록 8:1

요한 묵시록 8장 첫부분에서 제목을 따온 은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요한 묵시록 8장은 영화의 시작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낭독되면서 대칭 구조를 이룬다. 요한 묵시록의 최후의 심판은 레퀴엠의 “디에스 이라이(Dies irae)”로 유명해진 “분노의 날(Day of Wrath)”에 대한 예언적 기록이다. 요한 묵시록에 따르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여러 전조들에 이어 마지막으로 7번째 봉인이 뜯기자 30분 동안 세상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기는 신이 침묵하는 시기이자, 사람들이 내적인 회의에 휩싸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즉, 암흑 속에서 자신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그 순간의 부조리를 명상하게 되는 죽음의 순간인 것이다.

목회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분위기에서 자란 베리만은 이 영화를 연출할 당시에는 종교에 회의적이었다. 즉, "과연 신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재하는 허상일 뿐인가?"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라는 인간 구원에 대한 물음과 함께 신학적 질문으로 고뇌했던 절실한 탐구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주관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영화에서 반복된다. 영혼의 공허함과 자신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혐오, 신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구를 지닌 기사 블로크의 모습은 베리만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마녀 사냥으로 젊은 처녀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광기어린 페스트의 창궐과 인간성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대답 없는 신의 침묵 앞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주인공은 영화 제작 당시, 즉 1950년대의 회의에 가득 찬 지식인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긴장된 정치적 상황에서 핵 전쟁 발발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중세의 페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으로 은유한 베리만은 인류 파멸의 위험을 눈앞에 두고 신의 존재라는 실존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으로 고뇌하던 1950년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기사 블로크의 여정 속에 담아내었다. 즉, 성경의 “요한 묵시록”은 중세 암흑기의 혼돈의 시대에 유효했듯이, 1950년대 핵 전쟁의 불안에 떨던 시대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더 나아가, “요한 묵시록”은 의 실존적 탐구를 통해, 여전히 절망과 위기가 만연한 지금 이 시대의 현대적 예언서로도 전이될 수 있을 것이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한 편의 신비로운 철학적 우화!

영화 곳곳에 숨겨진 성서적 인용과 종교적 상징들!

“아버지가 설교를 하고, 신도들이 기도하고 노래부르고 강론을 듣는 동안 나는 낮은 궁륭들과 두꺼운 벽, 영원의 내음, 그리고 천장과 벽의 중세 그림들과 조각상들의 세계로 주의를 돌렸다.”

–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중에서

영화 은 제작의 첫 영감에서부터 마지막 대사에까지 성서적 인용과 종교적 상징들로 가득한 영화이다. 베리만이 유년 시절에 교회의 벽화와 조각상에서 보았던 요한 묵시록의 독수리, 천국의 풍경과 지상의 풍경, 장미 정원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성모 마리아, 죽음의 사자와 체스를 두는 기사, 인간이 기어올라간 생명수를 베는 죽음의 사자, 마지막 춤의 행렬을 암흑 나라로 이끄는 죽음의 사자 등은 그를 매혹시켰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이 모든 상징들은 아름답게 또는 흥미롭게 영상화되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또한,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암흑의 지대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은총의 수혜자인 요프와 미아 부부는 아들 미카엘과 함께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으로 이루어진 성가족(聖家族)을 상징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요프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를 환상 속에서 보기도 하며, 사랑이 충만한 이 가족은 삶에 만족하고 타인에게 친절과 환대를 베푸는 행복한 이들을 대표한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기사의 아내가 을 읽는 중에 사자가 문을 두드리면서 찾아오자 영화 내내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던 젊은 처녀는 사자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처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어요.” 이 대사는 최후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말했던 “이제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를 연상시킨다.

그 밖에도 요프의 마지막 대사는 요한 묵시록의 “왕좌에 있는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7:17)를 떠올리게 하며, 기사의 부인이 기사와 그 일행에게 대접하는 저녁 식사는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킨다. 또한, 고행자 행렬이 부르는 는 영화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이와 같이 영화 은 직설적인 표현과 비유적인 표현을 넘나들면서 종교적인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한 편의 신비로운 철학적 우화를 완성한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선과 악, 희극과 비극…

영화 속에서 대비를 이루어 강조되는 이미지들의 향연!

블로크: (죽음의 사자에게 체스 말을 고르게 한 뒤) “검은 말이군.”

죽음의 사자: “나한테 잘 어울리는군.”

영화 에서 죽음의 사자와 기사의 체스 게임은 매우 상징적인 극적 대립이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선과 악이 대비되는 것은 물론, 흑과 백의 체스 말이 상징하듯 검은 색과 흰 색의 강한 대비가 유려한 흑백 화면 안에서 강한 대조를 이룬다. 또한 죽음을 의인화한 죽음의 사자는 검은 망토와 창백한 얼굴이 만드는 흑백의 대비로 섬뜩함을 자아내며, 영화 속에서 죽음의 이미지는 해골, 시체, 광대의 가면, 교회의 벽화 등을 통해 곳곳에서 반복된다. 이 밖에도 밝은 하늘과 어두운 대지, 신앙과 속죄, 금욕과 쾌락, 희극과 비극의 대조가 영화 속 메시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경건하게 신앙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사와 정반대로 대조되는 캐릭터인 종자 옌스는 무신론자이자 냉소주의자로, 영화의 전개 내내 회의주의적인 경건주의자와 허무주의자 사이의 대립을 만들어 내며, 연극과 현실 사이의 기묘한 대조도 등장한다. 마을 광장에서 벌이는 광대들의 공연은 “사랑의 유혹”이라는 테마로 호색한과 바람난 여인을 등장시키는데, 공연하는 마차 뒤에서는 곡예단장과 대장장이의 아내가 서로를 유혹한다. 이와 같이 연극 공연과 실제 사건이 거울에 비친 영상처럼 교차되며, 풍자적인 동시에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연극 공연 도중에 광장에 등장하는 고행자들의 행렬은 희극과 비극, 밝음과 어두움의 대조를 이루며 분위기를 급격하게 전환시킨다. 고행자들은 페스트가 하느님이 내린 천벌이라고 믿고 참회의 의미로 서로 채찍질을 하며 순례를 하고 있다. 그들이 부르는 엄숙한 와 죄를 회개하라고 외치는 신부, 두려움에 떠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경쾌하고 발랄했던 광대들의 연극과 대조를 이루며 비극과 공포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킨다.

이처럼 밝음과 어두움의 명암이 대비되는 흑백의 스크린 위에서 베리만 특유의 예술적 서정성이 빛나는 인상적인 장면들은 잊지 못할 이미지의 향연을 선사한다.

엄숙하고 경건한 주제를 다루는 가운데

풍자와 해학과 유머를 잃지 않는 삶의 긍정성!

나는 이 “진지한” 예술 영화의 정수라는 그 명성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유머와 희극적 요소들이 간과되는 사실에 종종 놀라곤 한다.

-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 은 엄숙하고 경건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엄숙함과 가벼움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장면 전환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장면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것은 주로 캐릭터들의 몫이며, 배우들은 전형적인 성격을 지닌 캐릭터들을 자연스럽고 훌륭한 연기로 살아숨쉬게 만든다. 경건하고 진중한 기사 블로크는 독백과 대화를 통해 철학적인 주제들을 직설적이면서도 명료한 대사들로 전달하며, 종자 옌스는 명철한 회의주의자로서 현실에 바탕을 둔 익살스러운 유머 감각을 뽐낸다. 인간의 나약함, 남녀 관계의 변덕스러움, 삶의 부조리에 대한 위트 넘치는 대사들은 인간 세상의 아이러니를 풍자하고 관객들에게 해학과 웃음을 선사한다.

옌스가 시체의 침묵을 반어법으로 표현하거나, 경박하고 어리석은 대장장이 부부를 놀려대는 장면은 세속적이면서도 풍자적인 대사들로 재미를 주며, 곡예단장 스카트가 자살을 연기하여 죽음을 모면했다가 다시 죽음의 사자를 마주쳐서 최후를 맞는 모습은 비극보다는 희극에 가깝다. 이와 같이 시적이고도 익살스러운 대화들이 이야기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면서 삶에 대한 긍정을 그려낸다.

또한,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자주 다루곤 하는, 사회에서의 예술가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에도 잠시 등장하는데, 교회 벽화를 그리는 화가와 연극을 공연하는 광대와 같은 예술가들의 대사를 통해, 예술이 처한 현실과 한계를 그려낸다. 돈에 눈이 멀어 순진한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리고 사제들의 요구에 따라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공연을 해야하는 광대들의 모습을 통해, 예술마저 종교에 휘둘리거나 대중에게 즐거움을 파는 수단으로 전락한, 타락한 현실과 사회로부터 박해당하는 예술가의 처지를 비판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의 명장면 하나!

죽음의 사자와 체스를 두는 기사

“오늘 아침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전 체스를 두자고 제안했죠.”

–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기사와 죽음의 사자 사이의 체스 게임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의 하나이자, 뛰어난 알레고리가 돋보이는 철학적 순간이다. 죽음의 사자를 의인화한 캐릭터와 체스 게임 장면의 이미지는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이후 많은 영화들에서 무수한 오마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가에 엄숙한 합창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요한 묵시록을 연상시키는 검은 독수리가 구름이 가득한 흐린 하늘을 날고 있다. 기도를 끝낸 블로크 앞에 갑자기 나타난 죽음의 사자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색 망토를 뒤집어 썼으며, 그의 얼굴은 강한 명암 대조에 의해 차갑고 창백해 보인다. 냉혹한 표정의 죽음의 사자가 나타나면서부터 영화에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다를 배경으로 구름 낀 하늘 아래에서 기사와 죽음의 사자가 체스를 두는 장면은 밝은 하늘과 검은 구름, 그리고 검은 바다, 기사와 사신, 체스 판 위의 흑과 백, 검은 말과 흰 말이 대조를 이루면서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의 대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철학적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영화적 순간을 영화 역사 속에 새겨넣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의 명장면 둘!

어두운 지평선에서 죽음의 사자가 이끄는 ‘죽음의 춤’

“저쪽에 그들이 보여.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전부 모여 있어.

섬뜩한 죽음의 사자가 춤사위를 이끌며 다 같이 손잡고 한 줄로 길게 따라오게 하고 있어.

맨 앞에는 죽음의 사자가 낫과 모래시계를 들고 맨 뒤에선 스카트가 류트를 들고 가.

장엄한 춤을 추며 해돋는 이쪽에서 어둠의 나라 저쪽으로 멀리멀리 사라져가고 있어.”

– 광대 요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죽음의 사자가 이끄는 ‘죽음의 춤’ 장면은 그 간결함과 아름다움으로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새벽, 아직 어둡고 번개치는 지평선 위로 죽음의 사자가 죽음의 춤을 추는 기사 일행을 데리고 가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광대의 대사에 의하면, 그들 위로 자비의 빗물이 떨어지면서 고단한 생애 동안 그들이 흘렸던 눈물을 씻어내어 주고 있다.

죽음의 춤은 Dance of Death 또는 Danse Macabre 라고도 불리며, 중세 시대의 벽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잉마르 베리만이 묘사한 죽음의 춤은 한 폭의 회화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긴 망토를 휘날리며 낫을 들고 있는 사신에 이끌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기사 일행은 손에 손을 잡고 죽음의 군무를 추며 저 너머 어딘가의 심연 속으로 건너가고 있다. 낫을 깃발처럼 휘두르는 사신에 이끌려 어둑어둑한 황혼녘 지평선 저쪽 끝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일곱 사람의 검은 실루엣은, 마차에 그의 가족을 태우고 밝은 곳을 향해 떠나는 광대 요프와 대비된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이 장면은 오히려 평화스럽게 보이며, 그 매혹적인 이미지는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남았다.

의 로저 에버트는 이 명장면을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베리만은 을 어떤 주장이나 클라이맥스로 끝낸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끝맺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 ABOUT PRODUCTION ]

최초의 영감 – 합창곡과 단막극

은 베리만이 유년 시절에 보았던 교회의 벽화와 조각상에서 유래하기도 했지만, 최초의 영감은 칼 오르프의 를 듣고 떠올렸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집 없는 사람들이 거대한 무리를 지어 지방들을 돌아다녔을 때의 페스트와 전쟁에 관한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는 시가집을 기반으로 독일의 현대 음악가 칼 오르프가 작곡한 이 명곡은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엄한 합창 로 유명한데, 이 곡을 듣고, 베리만은 을 만들겠다는 영감을 얻었다. 그 밖에 피카소의 회화 과 알브레히트 뒤러의 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베리만은 밝혔다. 또한, 은 베리만이 말뫼 시립 극단 연출가로 있을 당시에 연극 공연을 위해 만들었던 단막극 를 각색한 작품이기도 하다.

제작 일화와 35일만의 촬영

처음에 스벤스크 영화사에서는 의 각본에 대해 반응이 좋지 않았으나 베리만의 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시적 유머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얻게 되고, 이 영향으로 35일만에 촬영을 끝낸다는 조건을 걸고 영화 제작에 착수하였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베리만의 17번째 작품은 실제로 35일만에 촬영을 모두 마쳤다.

마지막 장면 촬영 에피소드

죽음의 춤 장면을 촬영한 에피소드 역시 인상적이다. 촬영을 하던 중 폭풍우가 다가와서 짐을 모두 싸고 몇몇 배우는 이미 숙소로 돌아간 상황에서 이상한 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먹구름 아래에서 죽음의 춤을 추는 그 유명한 장면은 군나르 피셔가 급하게 카메라를 다시 설치하고 급히 대역을 세워서 몇 분만에 촬영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전설적인 명장면은 즉흥적으로 촬영되었다.

촬영과 편집, 음악, 안무

영화 은 어느 날 새벽에서 다음 날 새벽에 이르는 짧은 연대기이다. 기사 블로크와 그의 종자 옌스의 여정은 새벽녘 해변에서의 일출과 더불어 시작되어 하루 뒤, 번개치던 밤의 어둠이 아직 남아 있는 새벽, 언덕 비탈 위에서 죽음의 춤을 이끄는 사자의 모습으로 끝난다. 기사와 종자를 주요 인물로 하는 이 간결한 로드무비는 연극적인 공간에서 전개되는 장면들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들이 교대로 교차된다. 베리만과 12편의 작품을 함께 했던 촬영 감독 군나르 피셔가 창조해낸 빛과 어둠의 대조가 인상적인 이미지들과 롱 쇼트와 클로즈업을 오고가는 긴장감 넘치는 촬영 및 편집은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으며, 음악의 엄격하고 장중한, 그리고 절제된 사용은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광대들의 공연에서 안무는 베리만의 첫번째 부인인 엘세 피셔가 담당하였다.

제7의 봉인 사진

제7의 봉인총 (27) 개의 댓글

Nancyjacksonlw1
Nancyjacksonlw1
반세기가 지났으면서도 수려한 영상미
barandadeviren
barandadeviren
단지 상업적 오락물로 취급되던 영화라는 매체를 단숨에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걸작이다. 베리만은 이 영화로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고 예술 영화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무엇보다도 신,인간,죽음 등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객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대단한 영화다
Bailee
Bailee
믿음이 맹신이 되면 세상은 악마가 지배하게 된다. 종교에 대한 깊은 물음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돋 보인 명작
6h6hn0abimVr3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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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란 각자에게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생각되어지네요
XuC8w5fQ9fghN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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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중에 고전... 예나 지금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던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독특한 영화이지만 의외로 간간히 유머도 있는 영화입니다.
Laurakingaxt521
Laurakingaxt521
역시 무모한 도전이었음..(1/10)
Dorothy22060551
Dorothy22060551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주제를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해낸 수작
Lindagreenram31
Lindagreenram31
구원과 애정의 영화
Chester
Chester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는 것
l07G4TeOD3oftpU
l07G4TeOD3oftpU
대사마다 장면마다 철학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상당히 어려운 영화다. 하지만 맨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죽음, 종교 등 철학적 주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행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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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from the Sea The Man from the Sea The Man from the Sea
奇幻,劇情 
2018.05.31 영화관 안에서

The Taming of the Scoundrel The Taming of the Scoundrel The Taming of the Scoundrel
喜劇 
1990.01.01 영화관 안에서

The Princess and the Frog The Princess and the Frog The Princess and the Frog
愛情,家庭,動畫,音樂 
1990.01.01 영화관 안에서

The Day the Series Stopped The Day the Series Stopped The Day the Series Stopped
紀錄,電視電影 
2014.10.12 영화관 안에서

새로운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