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너 The Goner

.침울한 분위기의 노래가 스크린을 뒤덮는다. "속죄소(贖罪所)가 타고 있다. 머리가 녹아 내리는 것 같다. 난 이 모든 진실의 뒤틀림을 없애는 데 일조하고 있다. 거짓에는 거짓으로. 진실에는 진실로. 어쨌든 난 진실을 말했고 죽는 건 두렵지 않다." 무표정한 벽과 잔인한 쇠창살, 그리고 견고한 철문과 사방으로 꽉 막힌 골방이 숨막힐 듯한 폐쇄감만을 자아낸다. 탈출구라곤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은 이 어두침침한 지옥 속에서 파멸에 직면한 한 남자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절규하고 있다.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뛸 운명을 알고 있는 자의 비탄인가? 처절하기만 한 정조(情調)와 달리 전후 좌우를 종횡무진 내달리고 위 아래를 자유로이 비행하는 카메라 움직임은 현란하기 그지 없다. 주인공 남자와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대담한 시점 쇼트를 보라. 매혹적인 스타일 속에 인간 실존과 신의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녹여 낸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 영화의 내레이션 격인 음울한 노래는 원래 호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 닉 케이브(Nick Cave)의 것이다. 배드 시즈(Nick Cave & Bad Seeds)라는 밴드를 이끌고 있는 그는 격정과 고딕적 기괴함으로 사랑, 살인과 죽음을 노래하는 싱어송 라이터, 뮤지션이자 글을 쓰고 발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고우너>에 나오는 <속죄소 The Mercy Seat>는 <텐더 프레이 Tender Prey>라는 앨범에 실려 있는 곡이다. 작년에 발매된 그의 베스트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관객이라면 노래에도 관심을 한 번 가져 보시길.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홍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