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자 The Sorter

.제 직장은 통조림 공장입니다. 제가 맡은 일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푸른 콩들이 지나갈 때 이물질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예리한 눈썰미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불순물을 색출해내는 철통수비를 자랑하죠. 일이 지루하지 않냐고요? 천만에요! 꼼꼼하기로 따져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천직으로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저와 달리 사람들은 접시에 음식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어도 마다않고 꾸역꾸역 먹어치우고, 빨간불인데도 마구 길을 건너네요 - 이래서 세상은 말세인가 봅니다. 그런데, 아뿔사! 제가 뭣에 홀려도 단단히 홀렸는지, 빨간 당근이 침투하는 것을 소탕하지 못한 일생일대의 과오를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오호 통재라~! 이 난국을 어찌 수습할꼬.
'불량식품'을 발본색원하여 건강사회를 구현하려는 '바른생활 사나이'의 사명감이 '레드 콤플렉스'로 확대되어 오히려 시민의 삶에 위해를 가한다는 설정은 단지 영화일 뿐 결코 실제상황이 아니며, 더군다나 우리사회의 '투철한 반공정신 수호세력'을 겨냥하여 흠집내려는 불순한 기도는 절대로 아님을 밝혀둠. (1998년 제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나호원)